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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더불어 삶은 만남과 부딪힘 그리고 이해의 시간
  • 글쓴이 김석주
  • 작성일 2020-03-25 00:00:00
  • 조회수 125

더불어 삶은 만남과 부딪힘 그리고 이해의 시간

 

 

글쓴이: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우리집에 강아지를 키운 지 4년이 되었다. 그전까지 내게 개는 공포의 존재였다. 길을 지나다 문 앞에 나와 앉은 개를 볼 때면, 심장이 멈출 것 같아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거나 타인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 곁에 붙어서 지나가곤 했다.

 

어릴 때 우리 동네 사람들은 개를 마당에 따로 묶어 집 지키는 정도의 역할로만 여겼었다. 어느 날 부모님은 일 나가시고 오후반으로 혼자 늦은 등교를 할 때 마당에 묶여있던 개가 끈을 풀고 나를 따라왔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내게 그 개는 호랑이만큼이나 커보였고, 다리와 몸을 칭칭 감으며 핥아대는 순간 공포에 질려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꺽꺽 눈물만 삼켰었다. 다행히 이웃 아저씨가 나타나 개를 데려갔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늘 심장을 조이는 긴장으로 기억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들의 마음을 읽는 방법과 감각들을 익히면서,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소수 존재의 독특함, 그 가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에서 토끼도 키우고 병아리도 키우며 우리와 다른 언어와 몸짓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의 눈빛과 습성들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4년 전 딸이 강아지를 입양해 데려왔을 때는 공포가 다소 누그러들어, 약간의 긴장과 예민함으로만 맞았었다.

 

언어적 소통도 안 될 텐데, 똥오줌도 못 가릴 텐데, 산만해서 여기저기 뛰고 짖을 텐데, 인지가 안 되니 물건들도 다 물어뜯을 텐데....’

강아지에 대한 걱정들은, 마치 자폐성장애 아들을 키울 때의 하소연들과 비슷했다. 그랬다. 10, 20년을 넘게 키우고 나서야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되어 질 때의 기쁨, 그 작은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세상을 배워가는 기특함, 이제는 더 없이 사랑스럽기만 한 아들이지만 처음엔 참 힘들었다.

 

왜 그랬을까? 왜 비장애자녀를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느꼈을까? 몰랐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익숙한 범주의 소통방식이나 감각체계와 조금 다른 신경계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웠고, 어려웠고, 힘겨웠던 것이다.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눈동자 속의 많은 정보를 단번에 처리하기가 어려워 눈맞춤이 힘들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칠판에 분필 긁히는 소리처럼, 여자들의 하이톤이나 아기 울음소리에 유난히 예민해서 귀를 막는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단번에 여러 감각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기에, 낯선 장소에 가면 소리와 상황과 대상이 혼란스럽고 무서워 우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모호하고 추상적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알아채기가 어렵기에, 숫자와 도형, 간판과 건물, 사물과 시간의 규칙에 더 쉽게 접근하고 집착하는 것임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들이 세상을 배울 때 좀 더 천천히, 좀 더 낱낱이, 좀 더 반복적으로 느긋하게 다가가고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었으리라.

 

걱정과 절망의 눈으로 아들을 보기보다는 숫자 1,2,3을 익히듯 재미있는 관심끌기로 눈맞춤의 시간이 1, 2, 3초 늘어날 때마다 편안한 미소를 보내주었으리라. 문 닫는 소리, 바람소리, 특정한 소리에 깜짝 놀라거나 울 때마다 기억해두었다가 문 틈에 고무를 끼워주고, 창문을 닫아주고, 좀 더 부드러운 저음으로 이야기해주고, 시끄러운 장소에선 귀마개를 준비해 천천히 적응하도록 도왔으리라. 미장원, 병원, 여행, 어디든 낯선 장소에 갑자기 데려가지 않고, 그림과 사진으로 익히기, 모의시연 해보기, 그 장소 구경하기, 문을 열고 들어가 잠시 앉아 있는 것부터 단계적으로 경험케 하였으리라.

 

개가 사람의 몸을 감싸고 핥아대는 것이 순수한 호감임을 알았더라면, 내가 어릴 적 개를 그렇게 무서워하진 않았으리라. 자폐인들의 혼잣말이나 상동행동, 사물과 시간에의 집착이 스스로 감각을 안정시켜 세상을 배워가는 최선임을 알았더라면, 가장 행복해야할 엄마와 아들 사이에 그토록 많은 눈물이 흐르진 않았으리라. 아들도, 이렇게 불확실하고 복잡한 세상을 천천히 단계적으로 접할 수 있었더라면 덜 무섭고 덜 혼란스러웠으리라.

 

우리 삶 대부분의 오해와 갈등은 서로를 알지 못함에서 온다. 세대 차이, 남녀 차이, 지역 차이, 그중에 태어날 때부터 독특한 기질을 가진 소수자들은 더욱 소외와 혼란을 겪게 된다. 그것은 때로 비난과 혐오, 절망과 분노로 부딪혀 드러나기도 한다.

 

곧 다가올 42일은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이다. 지역명소마다 파란 경관 조명을 밝히고, 자폐인의 가족과 이웃들은 파란 옷을 입고, 이렇게 호소한다.


자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입니다. 자폐인의 독특한 행동을 사랑과 이해로 보아 주세요. 천천히 쉽게 말해주시고, 이들의 반복적인 행동패턴을 존중해주세요.”

 

어릴 적 무서워했던 강아지와 4년을 함께 살면서, 이제는 옆구리에 품고 자고, 수시로 서로 핥고 만지고, 장난감을 주고받고, 같이 걷고 달리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마음이 스르르 녹는 교감을 경험하고 있다. 아들과 24년을 살면서, 여전히 말이 어눌하고 낯선 장소를 불편해하고 정해진 패턴이 깨어짐을 싫어하지만, 서로 간 문자로 새로운 규칙을 타협하고 나이든 엄마가 놓치는 일들을 오히려 아들이 챙겨주며 편안하게 소통하고 있다.

 

자폐성장애를 포함한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이웃들과 이렇게 사소한 일상 속에서 만나고 부딪히고 알아가는 오랜 시간의 경험만으로 가능하다. 마트에서, 지하철에서, 공원에서, 수영장에서,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날을 희망하며 오늘도 파란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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