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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 않은 사회적 거리두기
  • 글쓴이 김석주
  • 작성일 2020-09-22 09:23:17
  • 조회수 128

낯설지 않은 사회적 거리두기

 

 

글쓴이: 김석주 (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재활사/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여러 달 계속되는 코비드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 속에서, 주변의 발달장애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말씀하셨다.

 

낯설지 않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잖아.”

 

대형마트나 음식점, 대중교통 등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지인들과의 만남도 가능한 한 줄이고 의식주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활동으로만 유지하는 일상. 그렇다. 우리에겐 이미 익숙하다.

 

25년 전 교회에서 결혼을 하고 첫 임신 중에도 예배 반주와 학생성가대 지휘를 했었다. 연년생으로 두 아이를 낳은 후 두세 해 동안은 유모차에 둘을 나란히 태워 이웃집에 놀러도 가고 또래 엄마들을 만나 육아 이야기를 나누며 놀기도 했었다. 사람들과의 만남과 바깥 활동은 삶의 활력소였고 즐거움이었다.

 

그러다 아들이 방문 닫는 소리나 박수 소리에 지나치게 놀라고, 언어 발화나 정서적 교감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함을 느껴, 24개월 즈음 버스로 한 시간 거리의 언어치료실을 다니게 되었다. 그때부터 아들의 치료와 교육으로 24시간을 보내었고, 작은 아이는 28개월부터 어린이집 종일반에 적응해야 했다.

 

아들의 장애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고 지인들과 거리를 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웃집에 가서 편히 차 한 잔 마실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잠시 눈을 뗀 사이에 신발도 안 신은 채로 집 밖으로 나가버린 아들을 찾아다니느라 속을 새까맣게 태워야 했고, 집 안에 있어도 온갖 물건들을 다 꺼내고 고장내기 일쑤여서 점점 더 이웃과의 내왕이 줄어들었다.

 

교회 집사님 한 분은 우리집에 안부차 오셨다가, 시멘트 바닥이 다 드러난 찢어진 장판과 벽지, 그리고 아들의 전기선 자르는 집착으로 TV, 오디오도, 선풍기도 아무 것도 없이 텅텅 빈 집안을 보며 눈물을 흘리셨다.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시며...

 

어느 날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씽크대 앞에 서서 먹게 한 적이 있었다. 아들에게 눈을 뗄 수가 없어 반찬을 만들어줄 여력도 안 되었고, 순식간에 밥상을 엎어버릴까 싶어 편히 앉아 뜨거운 국물을 먹게 할 수도 없었다. 친한 친구라 웃으며 이해해 줬지만, 그 이후로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할 수가 없었다.

 

명절에는 설거지하며 수다 떠는 모습조차도 부러웠다.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한 상에 앉아서 먹기는커녕 인사만 드리고는 친척분들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아들과 둘이서 쫓기듯 밖으로 나가야 했다. 텅텅 빈 거리를 걷다가, 철문이 내려진 대형마트 앞마당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한나절을 보내곤 했다.

 

아들과 나의 몸에 전염성 바이러스가 묻은 것도 아닌데, 우리는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불편케 하여 피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제 청년이 되어 집안의 물건을 고장 내거나 찻길로 뛰어들거나 밥상을 엎는 일은 없어졌고, 혼자서 전철을 타고 환승하여 복지관에 갈 수도 있고,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카드결제로 과자를 사 올 수도 있어 엄마인 내 눈에는 최선을 다해 자란 아들이 대견할 따름이다.

 

그러나 장애 특성적인 독특한 감각행동과 사회성의 부족으로 타인의 눈에는 여전히 경계의 대상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지하철에서 몸을 앞뒤로 흔드는 움직임을 보이면 옆자리 사람들이 아들을 피해 다른 자리로 옮기곤 한다. 마트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시식코너로 가면 판매직원이 흠칫 말을 멈춘다. 여전히 아들과 나는 긴장하며 타인들과 거리를 두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국민이 마스크를 끼고 얼굴을 가려 각자의 표정을 알 수 없고, 모두가 사회적 거리를 두고 긴장하며 지내는 요즘에 우리의 존재는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종일 장애자녀를 돌보며 바깥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어머니들은 오래전부터 최소한의 소비로 일상을 유지해왔었기에, 최근 코로나블루를 호소하는 주변인들을 보며 자신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울과 불안에 침잠해 지내왔는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코로나 최초 집단감염은 정신과 병동에 격리되었던 100여명의 정신장애인들이었다. 몇 년, 몇십 년 격리 속에 인권이 상실되었던 최약자의 참담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고, 학교와 복지관이 폐쇄되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도 않은 채로 온종일 갈 데도 없고 숨 돌릴 틈도 없이 24시간 집안에 갇혀버린 발달장애 모자의 동반자살이 제주에서, 광주에서 일어났다.

 

캄캄한 동굴 속이라도 저 멀리 빛 한 조각만 보이면 그곳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고 진흙에 미끄러지더라도 계속 걸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빛조차 흐릿해져 버릴 때, 앞도 뒤도 알 수 없을 때, 게다가 손 닿는 거리에 아무도 없을 때 주저앉게 된다. 우울과 불안은 그나마 살아있음을 느끼고 전하는 감정의 파장이다. 그조차 사그라들어 꺼지지 않도록 우리에겐 곁의 손길과 온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

 

앞으로 몇 달이 더 걸릴지는 모르나, 코비드는 점차 소멸될 것이고,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크고 작은 손상들은 입었으나, 다시 또 사회는 회생하여 활기차게 움직일 것이다. 그때 코로나 이전과 이후에도 오랫동안 소외되어 온 약자들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모두가 경험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며 받았을 긴장과 쓸쓸함, 우울과 불안, 길고 긴 세월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곁을 내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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